에스라폴
Ezrafol
엄마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만큼, 사랑은 늘 맨 뒤였습니다.
늦었지만 오늘부터,
그 마음에 복을 심겠습니다. Be OK.
저는 엄마를 원망하던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이름’이 아니라 ‘역할’로 불렸습니다.”
사람은 어느 순간, 자기 이름보다 역할로 더 많이 불립니다.
누군가는 “OO 엄마”, 누군가는 “가게집”이라 불리며 하루를 살아냅니다.
제 엄마 이선심도 그랬습니다. “이선심”이라는 세 글자는 늘 맨 뒤에 있었습니다.
엄마는 여섯 살에 부모님을 잃고 상경해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결혼해 아이 셋을 낳았고, 천식과 당뇨로 아픈 남편을 돌보며 장사와 집안일을 혼자 감당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라는 말은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얻어 입힌 옷이라도 매일 깨끗하게 손빨래해 입혔습니다.
그렇게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를 보냈습니다.
엄마는 “먹고 싶다”는 말조차, 자기에게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만삭의 몸으로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손에 쥔 돈은 그날 반찬값뿐이라 결국 그냥 돌아왔답니다.
그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엄마는 “먹고 싶다”는 말조차 자기에게 허락하지 못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엄마를 몰랐던 딸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소풍 도시락을 못 싸줬다고,
운동회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지금의 저는 압니다. 엄마는 오지 않은 게 아니라, 못 온 것이었습니다.
다만 엄마는 무뚝뚝해서 그 마음을 말로 꺼내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덧 저는 엄마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보였습니다.
젊은 날의 엄마는 어디에도 없고, 고생과 세월만 남아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진 뒷모습이요.
그래서 저는 ‘이선심’을 다시 부르기로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이선심을 위해 만들겠다고요.
엄마가 엄마의 엄마 뱃속에서 한때 ‘복덩이’라 불렸던 그 순간을,
다시 엄마에게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엄마의 이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李 善 心, 선(善)을 마음(心)에 품고 그 선함으로 사람과 길을 살리는 이름이었습니다.
내 복만 쌓는 이름이 아니라, 선의 온도가 주변을 따뜻하게 하고
결국 더 크게 돌아오는 복을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그렇게 살아왔는데, 정작 엄마 자신은 그 이름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 제품은 거창한 기적을 약속하려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엄마가 자기 몸을 조금 더 돌보고,
거울 앞에서 자기 이름을 다시 떠올릴 수 있게 돕는 루틴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에 멈추지 않겠습니다.
논문을 찾아 검증하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모발 루틴을 쌓아가는 공간을 만들겠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며 서로의 복을 키워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건 제품이 아닙니다. 편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이건 제품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복덩이 엄마’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당신 이름은 이선심. 선을 마음에 품고, 그 선함이 결국 복이 되어 돌아오는 이름입니다.”
오늘, 엄마에게 링크 하나 보내주셔도 좋겠습니다.
“엄마, 이제는 엄마 말고, 엄마 이름으로 살아도 됩니다.”
李 善 心
선을 마음에 품고, 그 선함이 결국 복이 되어 돌아오는 이름입니다.
